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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맛집

경주 감포 드라이브 코스: 문무대왕릉부터 감은사지와 숨은 맛집까지 떠나는 역사 기행

by 그래 잘했어. 2026. 10. 7.

여름방학의 끝자락,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은 깊이 있는 사색과 힐링이 필요했던 날에 남편과 함께 경주 동해안의 감포로 향했습니다. 30년 전 시아버님께서 감포에서 교장 선생님으로 재직하셨던 인연이 있어, 우리 부부에게 감포는 늘 그리운 추억이 서린 곳입니다. 그 시절 꼬불꼬불한 산길을 넘어 아이들과 찾곤 했던 이곳은, 어느덧 훌쩍 자란 아이들의 세월만큼이나 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이제는 경주에서 금방 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격세지감을 느끼며 널찍한 도로를 달려 도착한 감포 바다는 여전히 포근했습니다.

궂은 비가 오락가락하며 차창을 두드리던 날이었지만, 오히려 그 궂은 날씨 덕분에 동해 바다 특유의 깊고 묵직한 운치와 서사를 온전히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여정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찬란했던 신라의 역사적 자취와 오랜 세월의 흔적을 되짚어보는 뜻깊한 시간이었습니다.

비내리는 동해바다의 대왕암

1. 천년의 세월을 품은 호국 사찰, 감은사지 3층 석탑의 웅장함

  • 감포 바다로 향하는 길목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곳은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일대에 자리 잡은 감은사지입니다. 드넓게 펼쳐진 사찰 터는 옛 영광의 크기를 가늠케 하며, 별도의 복잡한 절차 없이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도록 무료 주차 공간이 잘 마련되어 있습니다.
  • 감은사는 삼국통일을 완성한 신라 제30대 문무왕이 왜구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건립을 시작했으나, 안타깝게도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픈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이후 그의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즉위 후 682년에 최종 완공하였습니다. 현재는 화려했던 당우들은 모두 사라지고 거대한 주춧돌 터와 함께 쌍둥이처럼 우뚝 솟은 두 기의 삼층석탑만이 남아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이 석탑의 높이는 무려 13.4미터에 달해, 실제로 그 앞에 서면 거대한 규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위엄에 저절로 숙연해집니다.
신라의 설화와 호국 정신 이 깃든 감은사지 석탑
 
  • 특히 이 탑에는 흥미로운 전설이 서려 있습니다. 문무왕이 죽어서도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유언을 남긴 것을 기려, 아들이 사찰을 지을 때 법당 아래에 특별한 공간과 구멍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이 수중에서 이 구멍을 통해 사찰 내부로 드나들며 편안히 쉴 수 있도록 배려한 선조들의 지혜와 상상력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방문해 신라의 설화와 호국 정신을 차분히 이야기 나누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을 것입니다.
석탑만 남아있는 감은사지
 

2. 동해 바다 한가운데 잠든 왕의 서사, 봉길대왕암해변과 문무대왕릉

  • 감은사지를 나와 해안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유적지인 문무대왕릉과 마주하게 됩니다. 해변에서 직선거리로 약 200미터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기암괴석들이 거친 파도를 가르며 거대하게 솟아 있는 모습이 바로 문무왕의 실제 수중릉입니다. 
"내가 죽은 뒤에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평안히 지킬 것이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 지내라"던 왕의 유언에 따라, 만들어진 '대왕암'

"내가 죽은 뒤에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평안히 지킬 것이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 지내라"던 왕의 유언에 따라, 아들 신문왕은 바다의 큰 바위 위에 부모의 유골을 모시고 이를 '대왕암'이라 명명했습니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던 날 마주한 봉길대왕암해변은 몽돌과 고운 모래가 섞여 독특한 해안선을 이루고 있었고, 쉴 새 없이 밀려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는 마치 천년 전 호국룡의 숨결처럼 느껴졌습니다.

 
  • 해변 주변으로는 방문객을 위한 넓은 주차 구역과 편의시설이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으며, 길목마다 해풍에 말린 오징어와 건어물을 파는 노상 상인들의 풍경이 정겨움을 더합니다. 비록 궂은 날씨로 인해 백사장 입수는 금지되어 있었지만, 거친 파도 소리를 배경삼아 백사장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의 정화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깔끔히 정비된 감포앞바다

3. 세월을 건너 여전히 푸른 눈동자, 이견대에서 바라본 풍경

  • 문무대왕릉을 둘러본 후 차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이견대로 향했습니다. 이견대는 문무왕의 수중릉이 가장 잘 조망되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아담한 정자로, 신라시대의 역사적 상징성과 자연경관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명소입니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아담한 정자 '이견대'

'이견대'라는 이름은 주역의 구절인 "비룡재천 이견대인(날아가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어른을 보는 것이 이롭다)"에서 유래했습니다. 신문왕이 바다에 나타난 용으로부터 나라를 구하는 보물과 가르침을 얻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는 신비로운 공간이지요. 조선시대에 이르러 옛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70년 발굴 조사를 통해 정확한 건물지를 확인하였고, 1979년에 신라시대의 전통 건축 양식을 고증하여 현재의 팔공산 기와 정자인 이견정으로 새롭게 복원하였습니다.

 
  • 정자 마루에 올라서면 눈앞으로 펼쳐지는 동해 바다의 수평선과 함께, 바다 한가운데 고요히 떠 있는 문무대왕릉이 한눈에 담깁니다. 저 멀리 대본항의 아기자기한 어촌 마을 풍경까지 어우러져,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한 묘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복잡한 도심을 떠나 고요하게 사색을 즐기기에 이보다 완벽한 쉼터는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바다 한가운데 고요히 떠 있는 문무대왕릉이 한눈에 담기는 ' 이견대 '

4. 감포 바다의 싱그러움을 담은 미식의 즐거움, 현지 횟집 탐방

  • 찬란한 역사 유적지를 발품 팔아 둘러본 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 남편 친구분의 현지인 추천을 받아 감포항 인근의 항구 횟집으로 향했습니다. 바닷가 바로 앞에 위치해 있어 창밖으로 거칠게 부서지는 파도를 감상하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입지를 자랑하는 곳이었습니다.
  • 주문과 동시에 수족관에서 바로 건져 올려 썰어낸 제철 활어회는 쫀득하면서도 씹을수록 감칠맛이 우러나와 여행의 피로를 단번에 씻어주었습니다. 특히 새콤달콤하고 깊은 맛의 특제 육수에 신선한 야채와 두툼한 회를 듬뿍 넣고 비벼 먹는 감포식 물회는 입맛을 확 사로잡는 별미였습니다. 식사의 대미를 장식한 매운탕은 얼큰하고 진한 국물 맛이 일품이었는데, 푹 끓여낸 생선 뼈에 붙은 실한 살코기를 발라 먹는 재미까지 더해져 비바람 속에서 쌀쌀해졌던 몸을 따뜻하게 녹여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새콤달콤하고 깊은 맛의 특제 육수에 신선한 야채와 두툼한 회를 듬뿍 넣고 비벼 먹는 '감포식 물회 '

여행을 마무리하며

  • 여름방학의 끝자락에 찾은 경주 감포는 찬란했던 신라의 호국 정신과 거친 동해 바다의 자연미, 그리고 남도의 후한 인심과 싱그러운 미식까지 고스란히 품고 있는 보석 같은 여행지였습니다. 과거 시아버님과의 추억이 깃든 고갯길을 지나 이제는 편안해진 도로 위에서, 흘러간 세월의 깊이를 느끼며 감포항의 풍경들을 더욱 애틋한 울림으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신라의 호국 정신과 거친 동해 바다의 자연미가 공존하는 감포바다

 

계획 없이 찾은 궂은 날씨마저 오히려 깊은 운치와 사색의 시간을 선물해 주어 더욱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번잡한 일상을 벗어나 지나간 추억을 더듬고 역사와 자연의 숨결을 느끼고 싶다면, 이번 주말에는 편안해진 도로를 따라 감포 바다로 향하는 여정을 계획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오래 기억에 남을  동해의 수중왕릉 대왕암